좋은글..

법정 스님의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유서니 2011. 4. 29. 17:46

 

  

 

인간이라는 고독한 존재

꽃이나 새는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우주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에 충실할 때

그런 자기 자신과 함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
사람마다 자기 그릇이 있고 몫이 있다.

그 그릇에 그 몫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안으로 살펴야 한다.

내가 지금 순간순간 살고 있는 이 일이 인간의 삶인가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이룰 것인가 스스로 물으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내 삶을 만들어 주는가
내가 내 삶을 만들어 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저마다 자기 그림자를 거느리고
휘적휘적 지평선 위를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일단 죽게 되면 조금도 삶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고

죽음 또한 내 자신의 일이니

살 때는 철저히 살고

죽을 때 또한 철저히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모란처럼 뚝뚝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게

얼마나 산뜻한 낙화인가.

 

새 잎이 파랗게 돋아나도록 질 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꽃은

필 때만큼 아름답지가 않다.

  

생과 사를 물을 것 없이

그때그때의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불교의 생사관이다.

 

우리가 순간순간 산다는 것은

한편으론 순간순간 죽어간다는 소식이다.

현자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지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이순간을 놓치지 말라.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고 순간순간 자각하라.

 

한눈 팔지 말고, 딴 생각하지 말고,

남의 말에 속지 말고, 스스로 살펴라.

이와 같이 하는 내 말에도 얽매이지 말고

그대의 길을 가라.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

너무 긴장하면 탄력을 잃게 되고

한결같이 꾸준이 나아가기도 어렵다.

사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령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인간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이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순간마다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늘 변하고 있는 것이다날마다 똑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남을 판단할 수 없고 심판할 수가 없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비난을 하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한 달 전이나 몇 년 전의 낡은 자로써
    현재의 그 사람을 재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비난은
    늘 잘못된 것이기 일쑤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 때
    그는 이미 딴 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다

    말로 비난하는 버릇을 버려야
    우리 안에서 사랑의 능력이 자란다
    이 사랑의 능력을 통해
    생명과 행복의 싹이 튼다

말과 침묵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침묵을 지키지만 마음속으로는 남을 꾸짖는다.
그는 쉼없이 지껄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을 하지만 침묵을 지킨다.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초의 한 생각

  

명상은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다.

사물의 실상을 지켜보고 내면의 흐름을, 생각의 실상을 고요히 지켜보는 일이다.

 

보리달마는

'마음을 살피는 한 가지 일이 모든 현상을 거두어들인다'고 했다.

 

지식은 기억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지혜는 명상으로부터 온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움튼다.

안으로 마음의 흐름을 살피는 일.

이것을 일과 삼아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최초의 한 생각에서 싹튼다.

이 최초의 한 생각을 지켜보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이다.

안으로 충만해지려면 맑고 투명한 자신의 내면을

무심히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명상은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훈련이다.

명상은 절에서, 선방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활짝 열기 위해 겹겹으로 둘러싸인, 겹겹으로 얽혀 있는

내 마음을 활짝 열기 위해 무심히 주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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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길

  

깨달음에 이르는 데는 오직 두 길이 있다.

 

하나는 지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비의 길이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면서

삶을 매 순간 개선하고 심화시켜 가는 명상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이 지혜와 자비의 길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지녀 온

불성과 영성의 씨앗이 맑고 향기롭게 꽃피어난다.

 

본래 청정한 우리 마음을 명상과 나눔으로 맑혀야 한다.

 

사랑이 우리 가슴속에 싹트는 순간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진정한 탄생이고 부활이다.

 

세상이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얼굴이고,우리 삶의 터전이다.

우리가 마음의 수양을 하고 개인의 수행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만 멈추라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 손으로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할 수 있으면 얻는 것보다 덜 써야 한다.
        절약하지 않으면 가득 차 있어도 반드시 고갈되고,
        절약하면 텅 비어 있어도 언젠가는 차게 된다.
        덜 갖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덜 갖고도 얼마든지 더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소유와 소비 지향적인 삶의 방식에서
        존재지향적인 삶의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지향적인 삶은
        우리 일상에 두루 깔려 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살아가는 기쁨이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 이르렀을 때,
        어느 쪽 삶이 우리가 기대어 살아갈 만한 삶이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인가 뚜렷이 드러난다.

        똑같은 조건을 두고
        한 쪽에서는 삶의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근심 걱정의 원인으로 본다.

        소욕지족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
        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 있다.

         

         

        진실한 믿음을 갖고 삶을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흔들림이 없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근거 없이 떠도는 말에 좌우됨이 없다.
        가짜에 속지 않을 뿐더러
        진짜를 만나더라도
        거기에 얽매이거나 현혹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눈을 맑히고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한다.

        그는 비본질적인 일에 한눈을 팔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세상을 사는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
        때때로 헤아려 본다.

        자기 삶의 질서를 지니고 사는 자주적인 인간은
        남의 말에 팔리지 않는다.
        누가 귀에 거슬리는 비난을 하든 달콤한 칭찬을 하든,
        그것은 그와는 상관이 없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지나가는 한때의 바람이다.
        그는 일시적인 바람에 속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바람을 향해서 화내고 즐거워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허수아비나 인형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타율에 의해 억지로 참는 일이 아니다.
        자기를 지키는 것은 곧 자신의 질서이다.
        그리고 자기 삶의 양식이다.
        자신의 질서요, 삶의 양식이기 때문에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남을 괴롭힐 수 없으며,
        또한 남한테서 괴로움을 받을 일도 없다.

        눈을 뜨라.
        누가 내 눈을 감겼는가.
        사물을 내 스스로 보지 못하고
        남의 눈으로 보아 온 그릇된 버릇에서 벗어나야 한다.

        활짝 열린 눈에는 티끌 하나도 묻을 수 없다.
        내 눈이 열려야 열린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삶 또한 무의미해질 것이다.
        삶의 배후에 죽음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낮과 밤처럼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
        영원한 낮이 없듯이 영원한 밤도 없다.
        낮이 기울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새날이 가까워진다.
        이와같이 우리는 순간순간 죽어 가면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살 때는 삶의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 하고,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가지에서 떨어지듯이,
        그래야 그 자리에서 새로 움이 돋는다.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날을 이룰 때,
        그 삶에는 신선한 바람과 향기로운 뜰이 마련된다.
        우리는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지
        매 순간 살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