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시 모음> 문인수의 '10월' 외..
<10월 시 모음> 문인수의 '10월' 외
* 10월 *
호박 눌러 앉았던, 따 낸
자리.
가을의 한복판이 움푹
꺼져 있다.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다.
(문인수·시인)
* 시월(十月) *
가을은 쓸쓸하나
시월은 슬프잖고
가을은 외로우나
시월은 고독찮네
루루루
풍성한 시월
노래하며 보낼래
(오정방·시인, 1941-)
* 10월 *
혹시
다 마셔버렸나요
빈 잔을 앞에 두고
후회하고 있나요
옆구리가 시리고
뼈마디가 아린가요
차분히 지켜보세요
저 깊은 하늘소(沼)에서
붉은 술이 방울져 내릴 겁니다
다시 잔을 가득 채웁시다
그리고 남은 날들을 위해
건배합시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누가 쏘았을까, 10월 심장을 *
누가 10월 심장을 쏘았기에
첩첩 산마다 선혈 낭자할까
골골 들녘마다 억새강이 흐를까.
내 안 뜨겁게 달구던 피도 흘러나가
가슴 저며 시려 오는 걸까.
(원영래·시인, 1957-)
* 10月 어느 날 *
10月 태양빛에
가득 찬 오늘
나 죽어도 좋으리
10月 비껴진 햇빛에
코스모스 흐느끼는 이 날
나 생을 마쳐도 좋으리
들국화 비에 젖는
10月 어느 날
나 본향으로 돌아가도 좋으리.
(홍경임·시인, 경기도 안성 출생)
* 시월 비 *
우수수
지는 낙엽은
나무의 한쪽 밑동에만
쌓이고
뚝- 뚝-
떨구는 빗방울은
내 한쪽 가슴만
적시운다
(정소슬·시인, 1957-)
* 가을·2 *
우리 모두
시월의 능금이 되게 하소서.
사과알에 찰찰 넘치는 햇살이
그 햇살로 출렁대는 아아, 남국의 바람.
어머니 입김 같은 바람이게 하옵소서,
여름내 근면했던 원정(園丁)은
빈 가슴에 낙엽을 받으면서, 짐을 꾸리고
우리의 가련한 소망이 능금처럼
익어갈 때,
겨울은 숲 속에서 꿈을 헐벗고 있습니다.
어둡고 긴 밤을 위하여
어머니는 자장가를 배우고
우리들은 영혼의 복도에서 등불을 켜드는 시간,
싱그런 한 알의 능금을 깨물면
한 모금, 투명한 진리가, 아아,
목숨을 적시는 은총의 가을.
시월에는 우리 모두
능금이 되게 하소서.
능금알에 찰찰 넘치는
햇살이 되게 하소서.
(오세영·시인, 1942-)
* 시월 *
하늘에서 걸려오는 전화벨소리
떼각떼각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소리
사무실이 바닥보다 창문 높이로 올라서고
벽에서는 횟가루 대신 구름냄새가 난다.
먼 구름에서 알밤이 빠지듯
너는 그렇게 내 품에 떨어진다.
너의 얼굴을 보면 보석을 머금고 있는 것이
석류만이 아닌 것을 안다.
너의 가슴을 보면
사과나무 가지가 휘어진다.
서류뭉치들이 연이 되어 나르고
시계추 끝에선 포도송이가 여린다.
시월은 하늘과
하늘의 친척들이 몰려오는 달
꿈과 기다림이 현금으로 거래되고
온 도시가 잠깐
하늘의 식민지가 되는
(민용태·시인, 1943-)
* 시월의 편지 *
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리느냐고
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모를 서글픔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고
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 바람 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 않을 엄살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내가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목필균·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